간만에 월남전 관련 책이 나왔다기에 올려봅니다.
어린 마음에 대학시절 읽었던 몇몇의 월남인이 쓴 월남전 소설들이 떠오르는군요. 상대편의 눈으로 본 전쟁은 어땠는지 하는 마음에.
몇몇 소설은 영화화해도 될만한 내용이었는데, 미국 입장에서는 적국이었고, 우리는 무관심한 전쟁이었으며 월남은 아직 완성도 높은 깔끔한 영화를 못 만드는듯...
글고 정확한 성조가 없어서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당 튀 쩜 (Dang Thuy Tram) 여사의 한국식 발음은 등수점 여사인듯. 빼어날 수인지 물 수인지... 그런 모르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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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이 떠나온 곳, 당투이쩜
<책>1970년 베트남전서 꽃다운 스물여덟에 전사한 한 여의사의 일기 <지난밤 나는 평화를 꿈꾸었네>
“임시혁명정부가 구성되었다. 그것은 혁명에 있어서 장족의 발걸음을 내딛는 역사적인 사건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전쟁의 잔인함을 느꼈다. 밤낮으로 폭탄, 제트기, 무장 헬리콥터, 공중에서 선회하고 있는 HU-1A 헬리콥터의 굉음으로 온 천지가 진동한다.
정글은 폭탄으로 깊게 파인 웅덩이로 가득하고, 나무들은 에이전트 오렌지(미군이 살포한 고엽제의 한 종류)로 색이 노랗게 변했다. 우리도 이 독극물에 노출되었다. 모든 간부들은 팔다리에 힘이 빠지고 나른해져서 움직일 수도, 먹을 수도 없다. 우리는 서로 격려해주려고 애썼지만 겁에 질린 모습이 역력했다. 서로의 얼굴에 언뜻언뜻 스치는 비관적인 빛도 숨길 수가 없었다.”(1969년 6월11일)
또 다른 여름이다. 40여년 전 베트남 정글, 1966년 하노이 의과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북베트남 공산군 군의관으로 자원입대한 그녀는 최전방 치열한 전장에서 나약하고 여린 자아를 승리에 대한 신심으로 담금질해나간다. 당투이쩜(Dang Thuy Tram, 사진)의 일기 <지난밤 나는 평화를 꿈꾸었네>는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그녀가 고독과 번민, 희망과 신심으로 써내려간 전장의 기록이다.
“M이 다시 온다고? M이? 수요일 밤이면 옛날 도로 위에서 만났던 M이 온다고? M은 우리 둘의 관계에 있어, 내게 잘못한 것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만약 그 말이 맞다면? 만약 그 말이 맞다면 우리 삶이 어찌 되었을까, M?... M을 보면 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 M, 상처난 제 심장에 또다시 슬픔의 씨앗을 뿌리지 마세요. 이 전쟁에서 우리 둘 다 살아남는다 해도 우리가 함께할 행복이 있을까요? 그런 일은 아마 영영 없을 거예요.”(1968년 6월28일)
꽃다운 나이, 헤어진 첫사랑 'M'의 소식이 간간이 전해질 때마다 혼란스럽다. 하지만 그녀는 북베트남군 대위인 'M'을 잊지 못하며, 함께 전선에서 고군분투하는 그를 진심으로 걱정한다. 전장의 고요, 첫사랑과 가족, 고향을 향한 향수로 고독에 젖어들기도 한다.
“다들 깊은 잠에 빠져 있을 1시 30분에 잠이 깨었다. 광활한 정글은 희미한 달빛 속에 고요했다. ‘해방의 소리 방송’은 향수에 젖은 음악을 내보내고 있다. 음조가 구슬퍼, 우수에 젖었다. 갑자기 아빠 엄마가 있는 따뜻한 집이 그립다. 정글의 밤 풍경이 나를 고독하게 한 것인가? 새삼 집도 절도 없는 고통이 밀려온다.
투이, 집도 절도 없는 외로움을 겪고 있는 건 투이만이 아냐. 상처 입은 몸으로 외로움을 견디고 있는 부상병이 바로 옆에 있다는 사실을 잊은 거야? 남부 지역의 수백만 명의 국민들도 슬픔과 복수심 속에서 지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1969년 4월29일)
2005년 한 베트남 신문에 연재되며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일기는 베트남사람들이 연재된 일기를 오려 돌려보고 서로 읽어주는 등 그 열기가 뜨거웠고, 이후 책으로 출간돼 30만부가 팔리며 베스트셀러가 됐으며, 당투이쩜의 일기는 2005년 베트남의 10대뉴스로 선정되기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일기의 특성상 소설처럼 잘 짜여진 구성으로 기승전결 구조를 갖춰 읽는이의 감정을 모았다가 정점으로 치달아 폭발시키는 힘은 없다. 그날의 감정상태나 전황에 따라 내용의 기복이 있어 하루하루 내용이 연속적이지 않은 경향은 있지만, 미국의 침략으로부터 조국을 지키기 위해 청춘을 바치다 스물여덟 짧은 생을 정글에 묻은 여의사 당투이쩜이 그날그날을 되돌아보며 내일의 의지를 불태우던 심호흡을 되새기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바꾸려던 한 인간의 고뇌와 함께 하는 의미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올초 ‘IMF 구제금융’까지 거론되던 베트남의 경제위기가 점차 잦아드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사회주의국가가 받아들여야 할 ‘모범’으로 ‘칭송’되던 ‘베트남식 모델’의 신화는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프랑스, 미국과의 잇따른 전쟁에서 이겨 두 대국의 군대를 쫓아냈다는 자긍심을 가졌던 사람들이 미국문화를 탐닉하는 젊은이들을 걱정한다는 어울리지 않는 듯한 얘기들은 오랜 전부터 베트남에서 들려왔다. ‘도이머이 정책’으로 대변되는 고도경제성장과 나날이 심각해지는 빈부격차의 명과 암, 전문가들은 위기에선 벗어날 수 있겠지만 회복에 오랜 시간이 걸리고 그 부작용도 심각할 것으로 전망한다. 21세기의 베트남은 또 다른 전환점에 서있는지도 모른다. 그녀가 꿈꾸던 조국 베트남의 미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 한 걸음, 한 걸음 있는 힘을 다해 고개를 넘으면 또다시 험난한 언덕이다. 훗날 사회주의의 향기로운 꽃 속에서 살게 된다면, 이 광경을 기억하리라. 공동의 목표를 위해 피 흘린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기억하리라...”(1968년 5월31일)
당투이쩜은 전황이 악화돼 돌보던 부상병들과 함께 고립되자 식량과 의약품을 구하러 마을로 내려가다 미 보병 21사단 4대대 D중대인 일명 ‘아메리칼 사단 소속 중대’ 제2소대의 매복에 걸려 ‘보이’라는 이름의 어린 북베트남군 병사와 함께 사살됐다. 미군 전투보고서에 따르면, 투이의 소지품에서 발견된 것은 라디오, 쌀 주머니, 자신이 치료한 부상병에 대한 진료기록부, 마취제 노보카인 몇 병, 붕대, 북베트남군 대위의 사진과 그에게 쓴 시 그리고 일기였다고 전해진다.
우리 또한 살을 에는 눈보라를 헤치고 ‘만주를 내달리며 진격하던 전사들의 붉은 발자국’을 잊지 않고 후대들에게 더 나은 사회를 건네주는 것이 선대에 대한 예의요, 후대에 대한 의무가 아닐까. 베트남사람들의 가슴에 당투이쩜이 오래도록 간직되길 빈다.★
* <지난밤 나는 평화를 꿈꾸었네>, 당투이쩜 씀, 안경환 옮김, 이룸, 2008년
나름대로 이 사람들 자부심이 대단하다고 하지요?
그리고 자기들 표현대로 해방, 주체의 보존(미국에게 승리)..이런 것들은 높히 칭송할만합니다.
그러나 그것뿐이네요
제가 보기엔 중진국 이상으로 절대 성장하지 못합니다.
근거는 제가 늘 주장하는 삼균등(=삼분) 사회로써 AO 또는 OA가 추진하고 나가는 동력이 없습니다. 아직은 잠잠하지만 이 사회도 조만간 인권, 평등, 자유, 복지에 대한 많은 시련들이 전개될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그리고 얼만 전까지 해왔던 것처럼
특히 주한 대사관이나 무역대표부 근무자들의 부패도 심하다는... 이런 부패와 비리가 결국 국가적 비효율로 나타난다고 하니...
중국도 그렇겠지만 조만간 불어닥칠 인권 및 평등에 대한 욕구가 엄청날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