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결지에 집합해서 그날 입대한다고 모인 동기생들과
따라온 부모님들이 다 헤어지고 이제 훈련소로 이동할 시간
동기생들이 부모님들 계신 방향으로 큰절을 올릴때
나도 덩달아 그쪽으로 큰절을 했다.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왔으니 여기서라도 그렇게 하고 싶었다.
혼자 그냥 서 있기도 어색하고....
교관(DI)들의 명령에 따라 이리저리 줄이
맞춰지고 우리는 처음본 새끼들끼리 이리저리 눈치를 살폈다.
훈련소 주변에서 주워들은 얘기로는 앞으로 가다 길 한번 꺽여서
부모님들 안보이면 그때부터 온갖 욕과 구타가 시작될 거라 했는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미 부모님들과 우리들 사이의
거리가 서로의 소리가 안들릴 정도 거리였고 생각보다 가까이 있는
DI들 그들의 입으로 통해서 나오는 찰진 욕 한마디 한마디가
언제든 우리를 후드려 깔 준비가 되었있음을
친절히 알려주고 있었다.
'뭐 이정도는 첫만남의 기선제압인가?'
이런 안일한 생각은 10분도 되지않아 현실임을 받아 들이게 되었다.
당시엔 IMF이전이라 지원경쟁이 그렇게 치열하지도 않았고
해병대라 하면 사회에서 스스로 한따까리 한다고 생각하는
새끼들이 많이 들어오는 시기였는데,
동기들끼리 제법 눈치싸움도 많이하고 그랬었다.
좆나 의미없는 짓거리였다.
그날은 1997년 4월 9일 이었다.
첫날은 훈련소로 가면서 오리걸음 앉았다 일어서기등등 별
시잘대기 없는 똥군기로 목소리만 키워놓고 끝난것 같다.
오후엔 소지품 전부 압수(요즘 티비에 '진짜사나이'처럼 하나하나
이건되고 이건 안되고 하는 그런 친절함은 없고 그냥 모두 압수해서
봉다리에 담았다) 뭐 사실 필요한건 하나도 없었다.
잘때 되니까 일인당 모포 두장씩 주고 불침번 근무자 지정되고
잠을 잔것 같다. 이층침상이었고 난 일층에 배정 받았는데
어쩐지 잠도 안왔지만 잠깐 자다가 추워서 깼는데 옆에놈도
깨어서 둘이 눈이 마주 쳤다. 어디선가 후다닥 소리도 들리고 욕하는
소리, 퍽퍽하면서 누가 두들겨 맞는 소리가 들렸는데 잠시후
총기상 하여 모두 대가리를 박으란다.
대가리 박는건 처음이었는데 엄청난 고통이었고
이건 훈련소에서 똥군기 잡기 위함이라 착각하고 좀만 참자하며
스스로 위안을 삼았으나 시간이 갈수록 뭔가 아닌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야간에 총기상 하게된 이유는 소지품 모두 반납 하랬는데
누군가 담배를 숨겨 놨다가 화장실에서 몰래 피우다 걸린것 이었다.
그새끼는 DI말을 어기면 이렇게 된다는걸 몸소 보여주는
시범타가 된 것이었다. 그새끼는 좆나게 맞고있고 DI 몇명이
침상을 돌아 다니며 반납못한 소지품 반납하라고 경고 함과
동시에 하나씩 몸수색을 시작했다.
담배나 라이터 같은거 집결한 상태에서 통로쪽으로 몰래 던지는
새끼도 있었고 모포나 베게밑에 짱박았다 걸려서 두들겨 맞는
새끼도 있었다.
나머지 새끼들은 팔굽혀 펴기 좆나게 하다 새벽에 다시 잘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이층침상에 발을 올리고 팔굽혀 펴기를
할수 있다는건 그날 바로 알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일찍 사단내 국군병원에서 신체 검사받고 이리저리
재식훈력 같은거 받으면서 이틀 정도 흘렀다.
아직 보급받은 군복은 없었고, 입대할때 입고온 사복 그대로 입고
다니며 구르고 두들겨 맞고 하다보니 옷이 걸래같이 되었고,
밤엔 춥고 낮엔 계속 이상한짓만 시키고 시간나면 두들겨 맞고
밥은 좆같은 똥국만 나오고 이러다 이틀이 지난 것이다.
(이틀인지 삼일인지는 잘 모름)
여튼 이삼일 정도 지난 뒤 점심먹으러 가는 시간 식당앞에 집결한
상태에서 번호를 불린 훈련병들은 사열대 좌측으로 나오란
지시가 있고 싶어 번호가 호명되기 시작했다.
뭔지도 모르고 번호 불리면 두들겨 맞을거 같단 생각에 죄지은 것
처럼 머리만 숙이고 있었다. 그때 번호가 호명된 훈련병들은
신체검사 불합격(간염, 치질등)으로 퇴소되는 인원들 이었다.
그리고 또 한번 번호를 호명하진 않았지만
지금까지의 훈련소 생활 후(약 2~3일) 적성에 안맞을것 같다고
생각 하는 훈병이 있으면 나오라 했다. 난 지금 당장 집에 가고
싶었으나 먼저 입대한 A도 생각나고 내가 나가게 되면 밖에있는
B뿐 아니라 나머지 친구들에게도 쪽팔림을
각오해야 하기 때문에 억지로 참았다.
적성에 안맞다며 몇명이 뛰어 나갔고 DI는 이쪽엔 하고싶어도
신체상의 이유로 못하는 훈병과 이쪽엔 정신이 나약해 빠져서
사회생활도 제대로 못할것 같은 의지박약자 들이라며
여기 생활도 못하면 육군도 못간다는 저주스러운 말과
아주 경멸하는듯한 눈빛을 보내며 못하겠다 생각되는
사람 더 나오라며 소리를 질러댔다.
우리에겐 '동기야 같이하자'를 외치게 했고 그중에
못하겠다고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는 새끼도 있었고,
체력미달로 퇴소조치 되는 인원들중 남아있게 해 달라고 교관에게
바락바락 대드는 새끼도 있었다.
좆같은 밥을먹고난 뒤 군복등 보급품이 지급 되었다.
번호대로 나가서 주는데로 받아오는 시스템이었고
당연히 사이즈는 고려되지 않은채 지급 되었고 동기들 끼리
몰래몰래 바꿔서 입었는데 다행히 나는 대충 맞아서 그냥 입었다.
훈련소에는 1, 2, 3대대로 총 3개의 훈련대대가 있었고 각 1기수
(2주)차이로 운영 되었다.
훈련병들은 이동시 3인 1조, 3보이상 구보등 행동에 대한 제약이
많았고 사회생활 하다 금방 입대한 새끼들이 감당하긴 상당히
힘든 일이었다.
DI들이 정말 무서운건 훈련병들이 언제쯤 지칠지
언제쯤 요령을 피우게 될런지 타이밍을 기가 막히게 알고 있다는
점이다. 당연히 매번 비슷한새끼들만 상대하니 그럴만도 하지만
그땐 진짜 귀신들인줄 알았다.
오후 과업까지 끝내고 저녁때쯤엔 사복이랑 쓸데없는 소지품을
소포 포장하는 시간이 주어졌다.
편지지와 볼펜이 지급 되었는데 부모님께 편지를 쓰라는 것이었다.
나는 부모님께 잘있으니 걱정마시라며 짧게 쓰고
친구 B와 C에게 편지를 썼다.
친구들에게 쓴 편지의 내용은 A의 말을 듣고 입대 했는데
맛있는거 많이 주고 옷도주고 여기저기 구경도 많이 다닌다는 둥
개소리로 그들을 꼬셨다. 나혼자 당할순 없다는 생각에
정말 빠르게 써내려갔고 편지를 받은 친구 두명을 빨리
여기서 만나보고 싶었다.
훈련복을 지급받고 나서는 훈련 강도가 그전과는 정말 확연하게
차이가 났다.
내 정신상태가 이것밖에 안되나 싶은 생각도 들고
여러번 체력에 대한 한계를 경험하고 나서 정말 모든게 무서웠다.
밤엔 불시에 연병장에 집합해서 기합을 받곤했는데,
어느날은 연병장에 서리도 내리고 얼음이 조금 얼어 있었는데
자다가 팬티바람으로 집합 당해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
좌로굴러 우로굴러 등으로 얼음이 다 녹을때 까지 하다가
다시 들어가서 잤던 기억이 있다.
지옥주는 티비에 워낙 많이 나와서 다들 아실테고....
시간만 나면 선착순에다가 작은 실수에도 이어지는 구타와
체력의 한계가 올때쯤엔 언제나 부모님의 은혜를 부르게 한다.
하늘 보고 노래 부르면 울지 않아도
눈에서 눈물이 계속 주르륵 흘러 내린다.
주말엔 종교 활동시간이 있는데 당연한 거겠지만 초코파이를
두개주는 불교가 내 종교가 되었고 부대안에 있는 절 앞에서 줄지어
초코파이를 기다리는 훈련병들 사이에 서있을때
내옆엔 어디서 많이보던 새끼가 내얼굴을 보며 쪼개고 있었다.
친구 A였다.
잠시 반가웠지만 죽이고 싶었고 나는 훈련병이라 DI의 허락없인
움직이지 못하는 신세였다.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해질때 쯤
친구새끼 A가 DI한테 요즘 훈병들 기합 좆나 빠져서
눈알 굴린다며 지랄하며 지나가 버렸다.
훈련소로 오늘 복귀 하면서 나포함 동기들은 이유도 모른채
오리걸음으로 이동해야 했고 DI는 평소보다 더 열받은 상태로
우릴 조져댔다.
그날 이후론 종교활동은 천주교 기독교를 번갈아 가며 다녔다.
훈련소 일정이 끝나갈 무렵 앞으로 군생활을 하고싶은 근무지에
대한 신청이 있었다.
4군데중 원하는 지역 순서대로 1차 2차 희망하는 지역으로
신청하면 된다. 이왕온거 멀리가자 해서 1차 연평도, 2차 백령도를
적었는데 결과는 포항으로 근무지가 결정 되어 통보 받았다.
좆같네 하면서 군대가 다 그렇다는거 하나를 배웠다.
앞으로 일어날 두려움에 대한 막연한 걱정에 적응되어 갈때쯤
6주간의 시간이 흘렀다.
요즘도 그런지 모르겠는데 6주간의 훈련이 끝나면 퇴소식이라며
부모님들 불러놓고 총검술을 하는 행사가 있다.
부모님과 친구 B, C가 같이 왔다.
오랜만에 부모님을 뵈서인지 눈물이 나려 했으나
친구들 때문에 억지로 삼켰다.
친구들에겐 재미있다며 계속 꼬심을 하다보니 이미 끝날 시간.
부모님과 친구들이 돌아간 뒤 화장실에서 한참이나 울었다.
그 얼마나 보고싶었던 사람들인가...
소대들어!! 발에찬 링소리 차락차락 소리
내면서 오면 얼마나 살 떨리던지
96년 1월
포항에 입대해서 지냈던 기억이 떠오르는군^^
그것도 3번이나 보셨다구요???
자중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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