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투리 억양때문에 신고도 제대로 못하고 맞은건 애교다
진짜 꼬인건 첫 야간근무를 나갔을 때인데
당시엔 순진하게도 침투하는 간첩을 잡기 위해 총을 들고
경계근무를 서는것 자체가 엄청난 긴장이었고 스트레스 였다.
첫 근무는 병장 선임과 같이 서게 되었는데 그날은 잊을수가 없다.
근무지로 이동해서 신고하고 경계근무를 시작 하자 마자
같이간 선임이 철모를 벗고 병기(총)등 무장을 해제하고
누워 자는 것이다.
미친건가? 어쩔려고 저러지? 하며 불안에 떨다 한시간쯤 지났을때
부시시한 눈으로 일어나서 나보고 '시발 아쎄이(신병)새끼가
잠을자네?' 이러면서 존나 때리는 것이다.
남은 시간 동안 앉아, 일어서를 반복하면서 뭔가 잘못된거 같다는
생각에 쌓여 이사람 미쳤구나 생각 하다 근무 철수를 했는데
다음날 아침 그병장 선임이 우리 내무실로 와서는
'저 아쌔이 새끼 기합 좆나 빠져서 근무지에서 졸았다'고
헛소리를 하고 갔다.
그다음은 당연히 집합당했고 근무시간에 신병이 졸았다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내 윗선임들 까지 맞았다.
처음으로 군대 좆같다고 느낀 일이었다.
자대 배치 받고 맨나 쳐맞기만 한건 아니다. 불려다니며 쳐맞고
집합당하고 그러다 시간 다보낸건 아니니
그런 오해는 없었으면 한다.
부대가 훈련 복귀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라 내무생활 하면서
시간 보내는 일이 많았는데, 짬만나면 신발(워커, 운동화, 슬리퍼)를
일일히 줄맞춰 정리하고 내무실 주전자에 물 채워놓고
시키지 않아도 가만히 앉아 있으면 어디 끌려갈거 같은 불안감에
계속 뛰어다니며 뭐든 했었고 그러다 보니 그들 사이에 자연스레
융화되어 갔다.
모두 짐승새끼들 마냥 틈만나면 나 잡아먹을것 같았던 선임들 중
하나둘씩 나를 챙겨주는 사람도 생겼고 한결같이 계속
좆같은 놈들도 있었다.
그러다 훈련이 잡혔는데, 꽤 길었던 일정이었던것 같다.
공수훈련도 병행했었는데 나는 공수교육을 아직 수료하지 못한
상황이라 말년병장 두명과 걸어서 산으로 이동했다.
완전군장하고 손에는 병기와 말통을 하나 들고 있었는데
그안엔 물이 80%가량 들어있었다. 산꼭대기까지 올라가는데
팔은 끊어질것 같고 다리는 풀려서 눈은 앞으로 보지만 다리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일쑤였다.
앞에 선임은 먼저 걸어가고 뒤에 선임은 빨리 가라고 재촉하는데
전쟁이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소원을 빌며 억지로 올라갔다.
나중엔 선임들이 말통을 번갈아 들어 줬지만 두번다시 들고
싶지 않았다. 산꼭대기에서 개인천막 치고 되지도 않는 무전기
설치하고 잠깐 앉아서 쉬고 있는데 선임들이 산밑에 수퍼에 가서
먹을것을 사온다고 내려갔다.
혼자만의 시간.
세상 제일편한 자세로 누워서 물도 맘껏 마시고 한껏 편하게
시간을 보내다 잠깐 잠이 들었다. 시발 하필 그때...
발자국 소리에 눈을 떠보니 다행히 같이 올라온 선임은 아니었는데
첨보는 간부(중사)였다. '개판이네 다들 어디갔어?' 묻는데
할말이 없어서 그냥 '모르겠습니다.'하고 말았다.
그렇게 우린 대항군에게 숙영지를 빼앗긴 거였다.
말도 안되는 상황인데 뒤늦게 올라온 선임들은 라면과 소주등을
사왔지만 모두 압수 당했고, 분위기는 심각한듯 했으나 나한테
별말하지 않고 넘어가 줬다. 산밑으로 내려온 나는 또다른 팀에
합류했고 첫날 오후 8시쯤 근무에 투입되었지만
다음날 아침까지 교대 근무자는 오지 않았다. ㅠ.ㅠ;;;
우리는 소대별로 소대장 인솔하에 이산 저산을 다니며
입으로 딱총 쏘기를 반복했고, 작은 동산같이 보였던 산등성이
하나에 이렇게 많은 길이있고 넓다는걸 새삼 느낄수 있는
순간 이었다.
훈련중 잠깐 짬날땐 10분간 쉬어 시간이 주어지는데
며칠이 지나 숙영지에 대대인원이 모두 모이게 된적이 있었는데,
그땐 밥도 차량 보급으로 받고 수통에 물도 채울수 있는 시간이
잠깐 있었다. 신병들은 장기자랑을 해야 했고 어디서 저런새끼들이
다있나 싶을 정도로 끼가 많은 사람들이 튀어 나왔다.
그날은 비가 왔는데 점심 다 먹고 비맞으면서 내가 부른 노래는
꽃봉가 이다. 꽃봉가는 해병대 싸가(?)중 하나 였는데,
훈련소에서 정식으로 배우진 않고 실무가면 인수인계사항으로
싸가들을 배우는데 재미있는 노래가 많다.
요즘도 계속 이어지는지 모르겠는데, 당시엔 노래 가사에 욕도 많고
자지 보지들도 나오고 해서 아마 지금은 사라지지 않았을까 싶다.
꽃봉가(꼰봉가, 따블빽가등등 제목은 여러가지였지만 꽃봉가라
하면 다 알아 듣는다)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꽃봉을 메고 존나게 쫄았네 연안부두 탱고 탈적에
그리운 님을 육지에두고 떠나가는 해병대용사
순검시간 꼴아박아 좆같은시간
취침시간 집합당해 좆나게 맞았네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네
군대 좆같네 군대 좆같네
니기미 씨발 군대 좆같네
음을 몰라 가사를 봐도 이게뭔가 하겠지만
이곡은 '들고양이들-마음약해서'가 원곡이고 그것을 개사한 곡이다.
https://youtu.be/x508jFhwhAo
저요?? 12사단 52연대 1대대 수색소대 출신입니다.
재미있게 질보고 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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