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는 후삼국 통일 이후 황제국의 제도를 사용하였다. 광종은 수도였던 개경을 황도(皇都)로 높여 부르고, 서경을 제2의 수도로 승격시켜 서도(西都)라 칭하였다. 고려는 초창기부터 임금이 자신을 부르는 호칭은 짐(朕), 임금의 명령은 조서(詔書), 임금의 호칭은 폐하(陛下), 임금의 아들은 태자(太子)로 정하는 등 황제국의 면모를 갖추었다. 그 뿐만 아니라, 묘호와 연호[2]를 사용하며 고려가 천하의 중심임을 선포했다.[3] "
"귀주 대첩 이후 전성기를 맞은 고려의 국제적 위상은 절정에 이르러 대국과의 외교관계를 주도하는 한편, 주변국과 제후국을 아울러 견고한 질서를 확립하였으며 체제 역시 더욱 굳건하게 되었다. 하지만 중기 이후 여진이 세운 금나라와의 관계에서 이자겸의 독단으로 금과의 형제관계를 맺고 이어 군신관계를 맺음으로써 외왕내제 체제는 흔들리게 되었다. 그러나 황제국 체제가 본격적으로 무너진 건 몽골의 대대적인 침략 때문이었다. 고려는 수십년간 초강대국 원나라의 대군에 맞서 싸웠지만, 결국 항복하고 말았다. 원나라는 고려의 태자가 원나라 공주와 결혼하도록 하였으며, 원나라의 부마국에 걸맞게 고려의 체제를 바꾸었다. 원나라의 간섭으로 인해 임금이 스스로를 부르는 호칭은 고(孤), 임금의 호칭은 전하(殿下), 임금의 아들은 세자(世子)로 낮추어 부르게 되었다. 또한, 원나라는 묘호에 조(祖), 종(宗)을 사용하는 것은 천자의 전유물이라 하여 금지시키고, 시호에는 원나라에 대한 충성심을 보이기 위해 앞에 충(忠)자를 붙이도록 하였다."
어케 뒤통수 맞았나요?
저때는 고려 황제였습니다
왕이라고 부르면 저때부터 중국황제 부하였다고 역사왜곡 하는거임
"고려는 후삼국 통일 이후 황제국의 제도를 사용하였다. 광종은 수도였던 개경을 황도(皇都)로 높여 부르고, 서경을 제2의 수도로 승격시켜 서도(西都)라 칭하였다. 고려는 초창기부터 임금이 자신을 부르는 호칭은 짐(朕), 임금의 명령은 조서(詔書), 임금의 호칭은 폐하(陛下), 임금의 아들은 태자(太子)로 정하는 등 황제국의 면모를 갖추었다. 그 뿐만 아니라, 묘호와 연호[2]를 사용하며 고려가 천하의 중심임을 선포했다.[3] "
"귀주 대첩 이후 전성기를 맞은 고려의 국제적 위상은 절정에 이르러 대국과의 외교관계를 주도하는 한편, 주변국과 제후국을 아울러 견고한 질서를 확립하였으며 체제 역시 더욱 굳건하게 되었다. 하지만 중기 이후 여진이 세운 금나라와의 관계에서 이자겸의 독단으로 금과의 형제관계를 맺고 이어 군신관계를 맺음으로써 외왕내제 체제는 흔들리게 되었다. 그러나 황제국 체제가 본격적으로 무너진 건 몽골의 대대적인 침략 때문이었다. 고려는 수십년간 초강대국 원나라의 대군에 맞서 싸웠지만, 결국 항복하고 말았다. 원나라는 고려의 태자가 원나라 공주와 결혼하도록 하였으며, 원나라의 부마국에 걸맞게 고려의 체제를 바꾸었다. 원나라의 간섭으로 인해 임금이 스스로를 부르는 호칭은 고(孤), 임금의 호칭은 전하(殿下), 임금의 아들은 세자(世子)로 낮추어 부르게 되었다. 또한, 원나라는 묘호에 조(祖), 종(宗)을 사용하는 것은 천자의 전유물이라 하여 금지시키고, 시호에는 원나라에 대한 충성심을 보이기 위해 앞에 충(忠)자를 붙이도록 하였다."
즉 황제->왕으로 호칭 바뀐건 원종 이후
스승 이야기는 드라마 내용이라고 하네요.
참고하세요~~
자객때려잡는것(팩트)
무장으로 활약(팩트)
스승이야기(픽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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