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칼럼 내용
요즘 ‘먹방’이 대세다. 먹방은 ‘먹는 방송’의 줄임말이다. 원래는 인터넷 개인방송에서 BJ(브로드캐스팅 자키)들이 음식을 먹는 장면을 방송한 데서 비롯됐다. 하지만 ‘먹방’이 널리 알려진 것은 배우 하정우 덕이다. 영화 <황해>에서 도망자로 등장한 그는 국밥·감자·김·총각김치·개고기, 이른바 5대 ‘먹방’신으로 인기를 모았다. 요즘은 MBC <아빠 어디가>의 꼬마스타 윤후가 ‘먹방 종결자’로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다. 후가 오물오물 ‘폭풍흡입’한 인스턴트 면요리가 화제를 모으면서 해당업체는 매출 급상승 효과까지 봤다.
먹방의 인기이유 중 하나는 ‘전복의 쾌감’이다. 한 세대 전만 해도 남의 집에 식사초대를 받으면 쌀밥 2그릇쯤 거뜬히 비워야 예의바른 손님이었다. 통통한 체형을 문제 삼는 사회적 분위기도 덜했다. 하지만 날씬한 몸에 대한 사회적 강박이 지배적인 오늘날의 한국사회는 과식과 탐식에 대한 죄책감을 달고 산다. 지식경제부 기술표준원의 최근 조사에서 식생활과 운동 덕에 40~50대 남녀 체형이 모두 서구형으로 변한 것으로 나타날 정도로 다이어트는 일상화됐다. 건강을 위해 천천히 꼭꼭 씹고 소식하라는 전문가들의 조언도 넘쳐난다. ‘먹방’은 그 같은 자기검열과 통제를 뒤집는다. 하정우는 얼굴의 모든 근육을 동원해 ‘흡입’할 기세로 음식을 먹어치운다.
먹방의 또 다른 인기이유는 ‘외로움’이다. 1인가구가 늘어나고, 가족끼리도 한 식탁에 둘러앉기 쉽지 않은 게 한국사회의 현실이다. 혼자 먹는 식사는 아무리 별미여도 그 맛이 별로이다. 그 빈 공간을 먹방이 채운 건 아닐까.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혼자 밥 먹는 이를 위해 타인의 식사장면을 담은 영상물도 시장에 나왔다고 한다. ‘고독한 미식가’라는 혼자 맛깔나게 밥 먹는 사내를 그린 TV미니시리즈도 적잖은 인기를 모았다.먹방은 순수하게 ‘식욕’ 그 자체이다. 먹방의 주인공들은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음식에 몰입한다. 계란과 간장을 넣어 비빈 밥, 시장에서 파는 어묵, 김에 싸먹는 쌀밥 등이다. 그런 의미에서 ‘불도장 먹방’이라거나 ‘스테이크 먹방’은 성립되지 않는다. 각종 식도락 TV프로그램에서는 특출하게 맛난 음식이 식욕을 동하게 하고, 식음료제품 광고는 구매욕을 자극하기 위한 장치로 먹는 장면을 동원하고 식욕을 도구화하지만 먹방의 중심은 순수한 ‘식욕’이다. 이는 먹기보다는 경쟁이 중심 소재인 ‘많이 먹기’ 대회와도 다르다.
그 의미가 ‘먹는 장면’으로 확대된 먹방은 너와 내가 다르지 않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계기도 된다. 스스로의 격을 낮춰 친밀감을 높이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먹방의 주인공은 어느 정도 순수해야 한다. 재벌의 먹방이나 부패관료의 먹방은 친밀하기보다는 탐욕스럽게 느껴질 것 같다.
원문보기:
http://biz.khan.co.kr/khan_art_view.html?artid=201303202149075#csidx2d1a2be9d8055b4a4ff2c0cce5d6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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