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생 여자는 그나마 차별 덜받은 세대입니다.60년대 여자들 가난한집안 대부분이 저렇게 살았어요.방직공장 신발공장에 취직해서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야간고등학교에서 공부하고 악착같이 돈벌어서 집안 살림에 보태고...좋은남자 만나서 그나마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좋으련만...
글 내용에서 74년생을 64년생으로 읽으면 거의 일치할 내용들 입니다
79년생입니다. 대학 들어가기직전 imf 터지고 집집마다 어쩔수없이 대학을 포기해야할때 여성은 대학을 포기하는 사례가 많았습니다. 집에서 남자보다 여자에게 희생을 강요했고 그런 광경 많았습니다. 그 당시 서울로 올라가 공장이나 서비스업으로 들어간 사례가 많습니다. 다만, 글에서 말하는 부분은 부모세대에게서 많이 보던 장면인데 주로 50~60년대생이 많죠. 이모가 60년대 초반생인데 딱 저 부분에서 말하는 방직공장과 구로동 공장에서 일했습니다.
86년에 어머니 봉급이 20만원정도였습니다. 당연히 공장에선 12만원정도 받았겠죠..저 내용을 믿기 싫으니 거짓말한다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실거고요..근데 정말 너무 불쌍한 인생이지만, 자녀복이 있으시니 행복하단 말을 적고 싶은 내용이잖아요..ㅠㅠ왜들 싸우고 난리신지..
74년 범띠입니다
시대에 맞는애기인것 같기도 하고요 저 고등학교때
알바했는데 30정도 받았던것 같아요 92년도 쯤80년대 후반에는 12만원 정도가 꼭틀린애기는 아닌것같네요
저 이야기라고 비슷한게 있다면
와이프랑 맞벌이 합니다
퇴근후 대리운전도 같이 하고요
아들이 똑똑하지 못해서 고등학교때 취업나가서 지금은 20살인데 직장생활하면서 많은 도음받고 있습니다
글쓴이의 의도와 달리 주작논란에 휘말리는 글들이 있습니다. 진심으로 바라건데 이 글은 주작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만약 아니라면 가슴 깊이 안아드리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하고 살아오신 당신이야말로 이 세상 가장 아름답고 누구보다도 귀한 분이십니다. 부디 쾌차하세요. 누군지 모를 당신의 수고로운 삶에 진심으로 감사드려봅니다. 그동안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솔직히 제가 가난하게 살지 않아 그런세상을 몰랐는데 우연히 동갑인 사람에게 피부관리 받게 됐는데 임신 했을때 고기먹고 싶은데 돈이 없어 고기집앞에서 고기냄새맡고 그랬다고 했을때 충격 먹음..내가 본 세상이 다가 아님을 그때 깨달음..지금도 진행형인 사람 아주 많을 듯. 학대도 번번히 일어나는 세상안데 멀그리 주작이다 아니다 타령인지..사랑 못 받고 자란 사람들 현실도피로 본인에게 잘 해주는 사람에게 무조건 결혼하게 돼있는데 그게 호랑이굴로 들어가는것임. 완전 불행의 정석 삶이네요
다른건 모르겠는데 중간에 의문이 팍듬 결핵
1년 기침약만으로 버티는지 의문이고
이상황이 치료가 가능한지
게다가 디스크 터지면 수술비용 만만치도 않고
재활에 뭐다 하면 일은 불가능함
폐결핵이 장기손상을 심각하게 일으킨후
일상생활이 힘든데 일이 가능은 한건지
그 상태에서 암? 병원 에서 저렇게 한번에 관측될 수준이면
이미 버틸수있는 몸상태가 아닐거같음
이글을 쓸 상황이 아니라 아마 그냥 쓰러졌을거같은데
작은오빠는 300이라는 큰 돈이 어디서 나옴?
딱봐도 82년생 김지영 보면서 괜히 지도 글 하나 적은거네
1. 저 글이 맞다면 벌써 굶어 죽었을 것입니다.
74년 출생 -> 86년 13살 2교대 12만원 급여 + 엄마 7만원
큰오빠 지방잡대 졸업할 때까지 단 한번도 알바한적 없음
고로 두 모녀의 급여로만 4인 가족의 식비, 차비, 월세 및
큰오빠, 작은오빠의 학비 까지 감당한것이 전혀 말이 안된다 여겨 집니다.
거기다가 큰오빠가 두 모녀의 급여로만 제주도 여행, 통기타 구입, 삼보컴퓨터를 구입했다는데
삼보컴퓨터가 85년 10월에는 국내 제조사 최초로 IBM PC AT 호환기종인 트라이젬 286을 500만원에
판매 했었고, 그 금액은 90년 중반까지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중고 pc도 없고, 조립 pc도 없었습니다.
모으면 얼마나 모은다고 그걸로 500만원대의 pc를 구매했다?
그냥 "2교대 근무로 급여 12만원 받았다!" 이리만 언급 했다면 사실로 치부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연 설명상 82년 김치영에 빠진 페미가 주작한걸로 생각됩니다.
소설은 걸러들 읽으시기 바랍니다.
2. 96년 23살 결혼 -> 결혼식 부조 1000만원 넘게 들어옴
찢어지게 가난하다는건 그만큼 인맥이 없다는 뜻입니다.
저리 가난하게 살았다는건 친척들도 그동안 쌩깠다는 반증입니다.
헌데, 시댁도 가난하고, 친정도 가난하고, 큰오빠는 받기만 했지 줄 사람이 아니고,
막내딸 결혼한다고 덥썩 친인척들이 우르르 나타나서 1000만원 넘게 부조를 했다?
소설은 걸러들 읽으시기 바랍니다.
3. 시부모가 결핵으로 입원했고, 1년후에 옮았다??
결핵은 치료를 시작하면 전염성은 빠르게 감소하여 치료 시작 2주 정도 되면
환자에게서 전염성은 사라지게 되며, 6개월 후에는 거의 완치 됩니다.
따라서 폐결핵 진단받으면 환자의 가족들도 검진을 받아 발병 상태인지 확인받고요,
96년 23살에 결혼해서 애들 데리고 문병갔다하면 둘째까지 데려갔다는 표현이니 2000년도
전, 후로 여겨지고, 그 시점이면 병원인 이상 결핵환자를 그리 함부로 관리 하지 않습니다.
결핵은 호흡기 전염이므로 가구, 침구, 의류, 식기를 따로 사용하거나 소독할 필요는 없으며
같이 식사하는 것으로는 전염되지 않습니다.
"그냥 74년에 출생해서 86년 13살에 2교대 12만원만 받았다!"
이리만 언급 했다면 사실로 치부 했을 것입니다.
82년 김치영에 빠진 페미가 주작한걸로 여겨지니
보배분들께서는 부디 소설은 걸러들 읽으시기 바랍니
가기 전에 먹고 싶었던 거, 가고 싶었던 곳
다 가보고 가시오.
먹먹하네요. 남은 삶은 좀 더 행복한 삶을 살아가시길...
더 힘든 삶을 살아오신 분들도 있습니다.
글 내용에서 74년생을 64년생으로 읽으면 거의 일치할 내용들 입니다
열 세살에 일 시작하셨다고
본문에 있어요.
읽고 이해가 안되시면
본인 독해능력 들키시니까
댓글은 지양하세요.^^
제가 93년 7월에 취업했는데
전 39만원이 첫 월급이었는데
좋은데 취직하셨나봐요.^^
본인이 아는 것이 세상의 전부는 아닙니다.
일의 종류와 능력.... 지역... 등등 여러가지 요인이 많아요....
하긴 수학1등 이라서 중학교나 고등학교 건너뛰면 가능은 할거 같은데 흠....
결핵 걸린거 알고 보험들었다???? 보험금 나오는게 가능은 할까??
38살에 큰 애 학원비가 늘었다고 하시는데요?
혹시 이런거 주작이라고 하시고
논리적으로 내가 맞잖아? 이러시면서
희열을 느끼시는부류세요?
아니면 굳이 독해도 안되시면서
이런 댓글은 왜 다시는거에요??
86년도 13살에 13만원이 월급이었다면 틀린말도 아닌것 같은데요
시대에 맞는애기인것 같기도 하고요 저 고등학교때
알바했는데 30정도 받았던것 같아요 92년도 쯤80년대 후반에는 12만원 정도가 꼭틀린애기는 아닌것같네요
저 이야기라고 비슷한게 있다면
와이프랑 맞벌이 합니다
퇴근후 대리운전도 같이 하고요
아들이 똑똑하지 못해서 고등학교때 취업나가서 지금은 20살인데 직장생활하면서 많은 도음받고 있습니다
아버지 자살해서 중1중퇴 후 양말공장,인형공장 다니면서 생활비 보태고 검정고시로 중,고졸했다는데 진짜 딴나라 얘기 듣는줄 알았습니다.
엄청 부지런하고 긍정적인 친구였는데 보고싶네요
저런취급 받으며 가족들과 인연을 이어나가지??
나중에 엄마랑 인연 끊었다는데..
그리 쉽게 끊을거 좀 빨리 끊던가..
쳐맞고, 약취당하면서 왜 빠져나올 노력조차 안함?
답답하네...
인생 한번인데..자기자신을 좀 사랑하려고 노력을 하지..으휴..ㅠ
행림들 진정하세요
주작이라고라,,?
그당시 레스토랑 알바하고 10만원 받았습니다.
시간은 대강 열시까지
그당시 공장이면 최소 25에서 30만원
결혼초에 때린거면 습관적이 아닌데?
다을 아시잖아요?예전에는 일배운다는 이유로 "꼬마"라고 먹고자고 일만 시키기도 했잖아요? 공장에서!!
저와 갑인데요
충분히 가능성은 있는 얘기일수 있는데
친정식구들이 너무 나쁜사람이 많고
시집가서도 고생을 너무 많이 했고
암걸려서 보험금에 일을 놓았다는 말이
주작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막 입사한 공장장님이 240 받았는데 너무적다고 알바 그만둘때 같이 그만 뒀음
년도나 비용은 그때쯤 얘기가 맞음
그것도 썹스센터라 많은 월급이었음.
주작인지 뭔지 모르겠는데 속답답하네 ㅡㅡ
댓글에 95년도 공장 맞교대 알바가 30이었다는게 놀랍네요.
인생사, 대부분 고단한 삶을 삽니다. 그 속에서 얼마나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짐에 따라 인생은 달라지죠.
보배님은 얼마나 고단한 삶을 사셨고 그 속에서 많은 깨우침으로 성공하셨나요?
많은 보배님들이 부정적인 내용보다는 고단한 삶 속에서도 성공 신화를 이뤄내신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진 분들의 글을 더 좋아하죠.
이 글은 그냥 우울하네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하고 살아오신 당신이야말로 이 세상 가장 아름답고 누구보다도 귀한 분이십니다. 부디 쾌차하세요. 누군지 모를 당신의 수고로운 삶에 진심으로 감사드려봅니다. 그동안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268,000원(검색해봄요)
이후 우리나라 경제 부흥기가 있었고,
공장만 다닌게 아니라..
봉투 풀붙이는 부업도 시켰을 듯 싶고요.
저때 딸들한테 막말하고,
큰아들바라기이신분들 많았고,
매맞는 아내도....ㅠ.ㅠ;;;
쉬쉬해서 그렇지..
옆집에서 많이들 듣지않으셨나요???
우리나라 그때 다 못살았습니다.주작이라도 공감은 가네요!
지금 생활수준 보면 많이 잘사는것 입니다. 보다보니 눈물이 나네요
진짜 마음이 아픈 글이네
축의금 천만원(당시 잘나가는집이라야 이정도들어옴) 에서 주작으로생각됨
1년 기침약만으로 버티는지 의문이고
이상황이 치료가 가능한지
게다가 디스크 터지면 수술비용 만만치도 않고
재활에 뭐다 하면 일은 불가능함
폐결핵이 장기손상을 심각하게 일으킨후
일상생활이 힘든데 일이 가능은 한건지
그 상태에서 암? 병원 에서 저렇게 한번에 관측될 수준이면
이미 버틸수있는 몸상태가 아닐거같음
이글을 쓸 상황이 아니라 아마 그냥 쓰러졌을거같은데
아부지는 또 존재가 너무 없네 ~
알콜중독 무직이지만 다정다감하담서 ?
저런 학대를 가만히 뒀다고 ?
신랑과는 또 사이가 갑자기 좋아지고 ?
당시 몇백, 천만원이 후딱 나온다는 것도 웃기고
글씨체 부터가 90년대생 말투인데 70년대생?
구라도 작작쳐라 페미련아
https://m.pann.nate.com/talk/361896414?currMenu=talker&order=RAN&rankingType=life&page=1
위 글이 주작같아보이진 않음.
21만원 기본급도 당시에 백분율로 공돌이월급 중 TOP 3였슴.
자꾸 주작이라 머다 하길래 글달음.
고졸초임 기본급 21만에,
잔업특근해서 37만 쥐어본게 최고였습니다.
나이대를 고려해서,
지방 소도시에서 충분한 이야기입니다.
참고로 저는 청주.
그때 취업했는데 재수해서 대학가라고 볼때마다 말한 형이 가끔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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