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전우용 교수님의 오늘 페북 말씀입니다.
교수님의 말씀을 들어보니
제가 몰랐던, 혹은 어렴풋이 느낌의 느낌 정도였던 주류가 된 유럽에서의 진보,사회주의와 우리의 그것에 대한 비교를 통해 갈피가 잡히는 것 같습니다.
아울러 냉대 당해 싼 정의당이 뭘 잘못하고 있는지도 명쾌해졌습니다. 교수님 글 전문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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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10.29 이태원참사 1주기 시민추모제’ 연단에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정의당 이정미 대표, 기본소득당 용혜인 대표, 진보당 윤희숙대표가 차례로 올라 추도사를 했습니다.
이들 중 이정미 대표를 대하는 시민의 반응이 가장 냉담했습니다.
분명 본인도 느꼈을 겁니다.
정의당이 왜 이 지경이 됐을까요?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최초의 ‘합법적 진보정당’으로 민주노동당이 출범한 이래 정의당에 이르기까지, 진보정당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꿈’을 제시하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그 꿈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우리 현실이 그 ‘꿈’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진보정당에 투표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지난 4년 가까운 기간 동안, 정의당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비현실적인 꿈’을 버리고, 자기 당 소속 국회의원들의 ‘현실적인 꿈’을 쫓는 정당으로 좌표 이동을 했습니다.
권영길과 노회찬이 꾸고 사람들에게 알렸던 ‘비현실적인 꿈’은 어느새 정의당에서 사라지고, 그 대신 류호정, 장혜영 등이 꾸는 자기들만의 ‘개인적이고 현실적인 꿈’이 정의당을 포획한 듯합니다.
오늘은 정의당이 ‘이준석 신당’과 합당 가능성까지 열어두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정의당이 다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꿈’을 제시하게 될 지 모른다는 실낱같은 기대가 완전히 사라지는 느낌입니다.
2020년 총선 직후에 썼던 글을 다시 올립니다.
혐오를 동원하는 정치집단과 합당 가능성까지 열어두는 ‘진보정당’, 생각만으로도 헛헛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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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의 '좌표' 변경
한국에서 ‘국제 기준’의 진보는 분단과 전쟁, 군사독재를 거치면서 철저히 소멸했습니다. 사회주의나 사회민주주의는 물론, 그들의 존재를 ‘정치적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생각조차 범죄로 취급됐습니다. ‘노동’이라는 단어조차 불온시 되어 ‘근로’로 바꿔 써야 했습니다. 노동자 조직과 연계된 진보 정당으로 민주노동당이 출현한 것은 고작 20년 전의 일입니다. 사회운동과 진보정당 사이의 관계를 둘러싸고는 여러 이견이 있었고 지금도 있지만, 진보정당이 노동자, 농민, 빈민 등 이른바 ‘민중’의 권익을 대변해야 한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었습니다. 계급이나 계층 문제를 중심으로 ‘진보 담론’을 구성하는 건, 세계의 보편적인 현상이었습니다.
정치적 성쇠의 문제와는 별도로, 사회당이나 사회민주당이 유력한 정치세력으로 자리 잡은 유럽에서 새로운 진보 담론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대량소비시대’와 ‘보편적 복지 시대’에 진입한 뒤의 일이었습니다. ‘절대적 빈곤’이 거의 문제되지 않는 상황에서, 계급이나 계층문제보다는 젠더, 평화, 기후 환경, 동물권 등의 문제를 중심으로 새로운 ‘진보담론’이 구성되기 시작한 거죠. 최근 몇 년 새 한국에서도 이런 문제들을 중심으로 한 ‘진보 담론’이 확산하여 2012년에는 녹색당도 생겼습니다. 편의상 계급, 계층 문제를 논의의 중심에 두는 진보를 ‘구 진보’, 젠더, 환경 등 새로운 과제를 논의의 중심에 두는 진보를 ‘신 진보’라고 하겠습니다. 현대의 세계적 추세는, ‘구 진보’가 정치세력으로 확고히 자리 잡은 상태에서 ‘신 진보’가 부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6411번 버스를 아십니까?”의 노회찬은 노동과 빈곤을 화두로 삼은 ‘구 진보’였습니다. 정의당의 주된 지지 기반도 수십 년간의 현장 노동운동으로 다져진 ‘구 진보’입니다. 아마 정의당은 이 구 진보를 중심에 두고 ‘신 진보’로 외연을 확장하고 싶었을 겁니다. 어쩌면 내부에서 ‘구 진보’가 퇴조하고 ‘신 진보’가 부상하는 과정이 진행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어쨌거나 진보 정당의 ‘외연 확장’은 필요한 일이라고 봅니다.
문제는 정의당 내부 사정과는 별도로 외부 관찰자들에게는 ‘외연확장’이 아니라 ‘좌표 이동’으로 보였다는 점입니다. 정의당은 노동, 서민, 고생, 투쟁 같은 이미지를 떠올릴 수 없는 사람들을 비례대표 앞 순위에 배치했습니다. 이들이 현장에서 얼마나 출중한 역량을 보였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선거 공보물에서도 ‘노동’의 비중은 줄이고 젠더, 청년, 기후환경, 동물권 등의 상대적 비중을 늘렸습니다. ‘구 진보’의 기반이 아직 취약한 상태에서 ‘신 진보’로 방향을 전환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으니, 사람들이 혼란스러워 한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물론 이번 선거 결과를 두고 정의당의 ‘몰락’이라고 하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정의당은 이번 선거에서 지난번보다 약간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습니다. 문제는 앞으로의 4년입니다. 이번에 당선된 정의당 의원들이 국회 활동과 언론 인터뷰 등에서 무게감 있는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자칫하면 ‘정치 동아리’라는 이미지가 고착될 수도 있습니다. ‘바보 이데올로기’가 한 걸음 물러선 빈자리를 건강한 진보 담론이 채워야 할 텐데 향후 4년간 정의당이 그런 정당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 당선자들의 활약이 기대되기보다는 걱정됩니다. 어쩌면 '진보의 가치'에 대해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다음 선거에서 정의당이 여전히 '진보'를 대표하는 정당이 될 수 있을지는, 그 재검토의 결과에 따라 결정될 거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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