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서 쟤 아빠는 깡패였네, 엄마는 술집여자였네... 그러면 누가 그렇게 인정하고 싶겠어? 아빠 엄마가 깨끗하든 말든 '개척단'이라고 하면 벌써 (사람들이) '에유, 그런 사람들이여' 해버렸어. 그게 제일 억울하다는 거야. 자식들한테도 미안하고."
정씨는 손끝이 야무져 어떤 기술이고 잘 배웠다. 미용학원을 나와 미장원에서 일하다가 전기 미싱(재봉)을 익혀 대전의 한 봉제공장에서 미군 담요를 만들었다. 민 단장을 처음 만난 곳도 이 공장이었다. 일 잘하는 사람을 선발해 "월급도 배로 주고 밥도 먹여 준다"는 감언이설. 할머니는 의심 없이 트럭에 올랐다.
"한 밤 중에 데려 갔어. 딱 와서 보니... 아이고 말도 하기 싫어."
정씨는 총 두 번 도망을 시도했다. 첫 번 째 시도는 오자마자였다. '속았구나' 싶어 같이 온 친구와 작전을 짰다. 도피 가능성이 적은 이들은 당시 '공인증'이라는 외출증을 끊어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그렇게 여차저차 핑계를 대고 서산 시내까지 도망쳤다. 그러나 이내 돌아왔다. 낌새를 눈치 챈 감호반이 "뒤를 밟았다"고 했다. 장정 두 사람이 슬금슬금 할머니의 뒤를 쫓았다. "무서운 마음이 들어 못 가겠더라." 그렇게 돌아온 뒤, 외출의 자유마저 제한됐다.
몇 달 후에는 '강제 결혼' 명령이 떨어졌다. 정씨는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고 했다. 머리를 싸매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거짓 전보를 치기로 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수포로 돌아갔다. 거짓임이 들통난 것이다. 민 단장은 정씨를 불러다 세워 놓고 "너를 내가 딸처럼 생각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분노했다. 그는 증언 도중 "민 단장이 지금 내 앞에 있으면 갈아 마시고 싶다"고 말했다.
보수는 국가발전에 기여하신 어르신들과 반역자이자 독재자인 인간을 동일시 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 독재자 때문에 어르신들의 삶이 더 힘들어 졌고, 더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겁니다.
살해되지 않았다면 세계사에 길이 남을 독재자로 기록에 남았겠지요....
장난 아니네
별지랄을 다 떨어놨네
저러니까 총알 맞고 뒈지지
와... 기가막힌다 정말.
이러기도 정말힘들것인디.....
정말궁금한데 이집구석 애비되는사람 잘한일이뭐요?아는사람
진짜 개 씹 ....
훅 간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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