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노믹스의 선봉에 선 일본 자동차업계가 진퇴양난에 빠졌다. 일본내 생산을 늘려 경기활성화에 앞장서야 할 처지인데 해외생산 확대 전략을 포기하고 국내로 복귀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는 18일 '엔저 시대 일본 자동차산업의 딜레마'라는 보고서를 통해 일본내 생산증대라는 정부 정책에 부응해야 할 일본 자동차업계가 이를 맞출 수단과 방법이 마땅치 않아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 정부는 당초 자동차 생산량을 늘려 침체된 제조업 경기를 살리고 일자리 창출을 늘리겠다는 산업정책 목표를 세우고 양적완화에 의한 내수 부양과 엔저에 의한 수출증대를 추진해왔다. 이런 아베노믹스 정책에 따라 엔화 가치는 작년 11월 달러당 80엔대에서 8월 현재 98엔대로 18% 급락했다. 일본 자동차업계의 손익분기점 환율인 85엔보다도 13% 하락한 수치다.
그러나 일본 업체들은 막상 '엔저' 카드를 들게 되고선 딜레마에 빠져버렸다. 그간 정부에 줄기차게 주장해온 엔고 완화 요구가 받아들여진 마당에 정부 정책에 어떤 형태로든 부응해야 하지만 정책목표인 일본내 생산증대를 맞출 수단과 방법이 현실적으로 마땅찮기 때문이다.
일본 업체들은 엔저에도 불구하고 환율변동에 따른 리스크를 회피하기 위해 해외생산을 확대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일본업계의 해외생산 물량은 1995년 556만대에서 2005년 1천61만대, 2010년 1천318만대, 2012년 1천583만대로 줄곧 증가일로를 걸어왔다.
수출 채산성을 악화시킨 엔고가 언제든지 되풀이될 수 있다는 가능성 외에도 도요타 리콜사태와 동일본 대지진 사태를 통해서도 판매지역에서 현지 생산하는 전략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을 깨닫게 된 것이다. 더욱이 일본 내수시장이 계속 위축되는 등 장기적인 내수 감소추세에 과잉 생산능력까지 겹쳐 일본의 생산경쟁력이 저하된 점도 일본내 생산증대를 추진하기에 쉽지 않은 요인으로 풀이된다.
결국 도요타는 향후 3년간 일본내 공장 증설은 없을 것이라고 공식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게다가 자동차업계가 거듭 밝혀온 일본내 생산량 유지 방침도 사실상 지킬 수 없을 것으로 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도요타는 국내 생산 최소 300만대 수준을 고수하고 혼다와 닛산은 각각 100만대 생산을 유지할 것이라고 밝힌 상태다.
그러나 일본내에서는 도요타가 2015년에 국내 생산량을 270만대로 줄이고, 혼다와 닛산은 2019년에 생산량을 각각 88만대, 70만대로 감축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도요다 아키오(豊田章男) 도요타 사장이 2012회계연도의 수익성 개선이 엔저보다는 원가경쟁력 향상과 투자비 절감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강조한 것도 엔저 효과에 수반된 일본내 생산증대 요구에서 벗어나려는 의도가 깔린 것으로 보고 있다.
카를로스 곤 닛산 사장도 "대부분의 차업체들이 특정 통화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에 따른 위험을 알고 있어 해외생산 이전을 중단하거나 일본으로 복귀할 가능성은 없으며 생산을 현지화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향후 아베 정권과 자동차업계의 마찰이 표면화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일본 자동차생산을 늘려 산업공동화를 억제하려는 아베 정권이 해외생산 확대전략을 포기하기 않은 채 일본 공급과잉 해소가 더 시급하다는 입장을 갖고 있는 일본 자동차업계와 맞부딪칠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아베 정권의 자동차산업 공동화 대책은 내수판매가 증가하더라도 그 대부분이 과잉 생산능력 해소에 흡수돼 생산량 증대 및 일자리 창출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주호 기자 jooho@yna.co.kr
출처-연합뉴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연합뉴스에 있으며,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0/200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