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불교, 천주교 등 한국 종교계 인사들이
한반도 운하건설에 반대하는 100일간의 국토순례에 나섰다.
기독교 등 4대 종교 성직자 및 환경운동가 20여명으로 구성된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 순례단'은
2월 12일 오후 1시 김포시 하성면 애기봉 전망대에서 출정식을 갖고
오는 4월 1일까지 낙동강 하구 을숙도까지의 도보순례 첫날 일정을 시작했다.
이에 맞추어
오늘부터 취래원에서도
경부운하 굴착을 반대하는 글을 8회에 걸쳐 게재한다.
게재물 세번째 입니다.
2. 운하의 굴착이 전근대적 발상이 아님을 해명해야 한다.
운하(運河)의 개념은 사전적으로, 내륙에 선박의 항행이나 농지의 관개, 배수 또는 용수를 위하여 인공적으로 만든 수로(水路)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교통기관의 일부분으로 보고 있다.(동아백과사전 1982) 즉 교통수단이 발달 하지 않았을 때에는 운하가 교통수단의 구실을 제대로 해냈다. 그러나 과학과 건설토목기술이 접목하여 발달하면서 운하라는 교통수단은 이미 용도폐기 되고 기존의 운하들은 관광을 위한 유물로 전락해 가고 있는 실정이다. 운하는 중앙집권적 전제왕권이 발달한 아시아지역에서 먼저 발달하였다. 약 2만 6천 년 전 이집트 바빌로니아 등지에서이다. 시대가 내려오면서 그리스ㆍ중국 등에서도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고대 아시아에서 만들어진 운하는 전제왕권의 강화차원에서 만들어졌다. 전제군주의 권위와 피지배층에 대한 수탈과 전쟁이 목적이었다. 그 후 유럽과 미국에서 산업혁명기를 거쳐 제국주의시대가 도래하면서 영국과 프랑스ㆍ독일은, 수출물량이 급증하고 곳곳에 도시와 공장이 들어서면서 물류유통의 원활을 도모하기 위하여 자국과 식민국에 운하를 굴착하였다. 그러니까 전근대는 인민에 대한 수탈과 전쟁 목적이었고, 근대 이후는 자본침략의 목적에서 운하가 굴착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극도로 발달하는 19세기 20세기를 거치면서 운하를 통한 화물수송이 시간의 한계에 부딪치자, 육로를 통한 물류수송의 필요성이 대안으로 제시되었다. 바로 철도의 건설과 육상도로망의 발달과 확충이다. 이렇게 철로와 육상도로의 발달이 오면서 운하의 필요성은 점차 사라졌다. 그리고 제국주의국가들은 그들의 식민국에서 물류유통비용과 시간을 절약하기 위하여 내륙의 지협부를 절단하여 두 지역의 해양을 연결하거나 또는 두 개의 하천을 연결하는 운하만을 팠을뿐이다. 이러한 운하의 대표적인 예가 수에즈운하이다. 즉 19세기에 파진 운하들도 물류수송의 ‘최단거리’를 얻기 위해 파졌다는 점이다. 이렇게 해서 식민지국가에 파진 운하는 선진자본국들의 산업사회 발달을 돕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19세기를 거쳐 20세기 후반기에 들어오면서, 화물자동차 성능의 비약적 향상과 함께 자동차도로의 고속화, 그리고 열차제조기술의 발달과 함께 고속철도화, 또 항공기의 성능 향상과 함께 항공물류기능 등이 급격히 발달하였다. 이렇게 되면서 세계 물류통운의 이용수단은 운하(고대~18세기)→철로(19세기) → 고속도로(20세기)를 거쳐 21세기는 항공로로 가고 있다. 따라서 물류수송수단으로서 ‘운하’는 그 존재가치를 상실하였다. 그런데도 후발 자본국인 대한민국의 17대 대통령 당선자가 “유럽의 성공 예”와 “국운융성의 계기”를 들어 경부운하를 파겠다고 한다는 것은 전근대적 발상이다.
잠시 우리 역사를 예로 들어보자. 우리 선조들이 왜 쓰시마와 만주영토에 대하여 영토주권을 주장하지 않았을까. 지금 생각하면 만주가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땅인가. 우리 후손들은 통탄하고 있다는 것을 17대 대통령도 잘 알리라 본다. 그러면 왜 우리 선조들이 만주에 대하여 영토주권을 주장하지 않았을까. 그것은 치자(治者)들 즉 양반집권층의 아주 단순한 사고에서 기인한다. 당시 양반지배층의 아주 짧은 소견 때문이다. 농경사회를 지배하던 당시 조선의 양반과 관료들은 만주를 통하여 중국을 오가면서도 만주의 영토적 가치에 대하여 너무 무지했다. 농경사회에서는 쌀의 생산이 최고의 가치였다. 쌀농사가 안 되면 조세를 거둘 수 없고 조세를 거두지 못하면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도 줄어든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련한 양반지배관료들은 삼림으로 우거지고 황량한 벌판 만주 땅이 쌀농사와 무관하다고 보았다. 무지의 소치다.
만약 쌀농사 이외의 다른 농업기술로도 먹고 사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미래지향적 사고를 하는 양반관료층이 한 사람이라도 있었다면 만주는 오늘날 우리 땅이 되어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후손들이 요긴하게 쓰이는 땅이 되었으리라 본다. 이후 19세기 전반부터 양반 지배층에게 쫒기고 버림을 받은 인민대중이 만주 땅으로 들어가 이곳을 세계에서 쌀농사의 가장 최북단지역으로 만들어내지 않았던가. 지배층의 사고가 자신들의 이기적 이익에만 미치고 있을 때 피지배층 인민대중은 만주 땅을 가치 있는 땅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러자 만주 땅에 뒤늦게 눈을 뜬 관료지배층이 만주영토주권을 주장하려 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마찬가지 이치다. 세계적으로 운하의 필요성과 그 기능이 감소되고 있는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17대 대통령과 그 수하들이 짧은 식견으로 경부운하를 판다고 고집하고 있다. 이는 우리 선조가 만주 땅을 등한시 한 이치와 같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하여 삼면이 바다이고 하천이 발달하여 봉건적 전제왕권시대에도 운하굴착의 필요성을 못 느꼈던 나라이다. 운하는 이렇듯 삼면이 바다이고 하천이 발달하고, 또 국토가 길고 좁은 나라에서는 불필요한 교통수단이다. 더구나 고속도로가 지나치게 발달한 한국 땅에서는 또한 쓸모가 없다. 만주영주권을 주장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경부운하가 파진다면 당장은 이익이 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 죄업은 천추의 한을 남기리라 본다.
우리나라는 영토가 좁고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지역간 FTA 체결 이후 농경지가 줄어들어 점점 식량안보의 위험에 최대로 노출되어 있다. 때문에 국토의 효율적 이용이 무엇보다 크게 요구되고 있는 실정이다, 일단 국토를 파헤치고 나면 이것은 더 이상 원상회복을 할 수가 없다. 좁은 국토에서 운하까지 판다면 우리영토는 더욱 좁아지게 된다. 17대 대통령이 임기초반 대중적 인기에 집착하여 일자리 창출이 목적이라면, 그리고 물류유통을 원활히 하기 위하여서라면 운하 이외에도 다른 토목건설분야가 많다.
고속도로의 복층화를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고속도로의 복층화는 국민식량을 생산하는 농토의 잠식을 막으면서 국토를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따라서 하역과 재선적이라는 이중작업 없이도 대통령이 바라는 물류비절감과 물류유통도 원활히 할 수 있다. 또 물류의 원활한 유통을 목적으로 한다면, 항공을 이용한 물류유통도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역대 대통령들의 개인적 욕심 때문에, 영토규모에 비하여 지나치게 항공시설이 과부화로 건설되어 있다. 이 항공시설을 적절하게 이용하면 운하건설보다 훨씬 값싼 물류유통을 할 수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