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참 당혹스러운 경험을 했다. 세상을 살다가 보면 갖가지의 당혹스러움을 겪기 마련이다. 그중 그래도 가장 괴로운 경우를 뽑아 보라면 아마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 두 명이 서로 극심하게 다툼을 벌이는 경우가 아닐까한다. 그 두 명중 한 명의 편을 들어줘야겠는데, 이것이 여간 당혹스럽고 괴로운 것이 아니다.
난, 영화배우 문소리를 참 좋아한다. 박하사탕에서 설경구의 강렬한 이미지와 상반되는 순박한 연기로 가슴 찡한 여운을 남겼던 문소리... 그리고 오아시스에서 그렇게 수수하고 예쁜 얼굴을 오직 연기에 대한 열정으로 일그러뜨리고 망가뜨리며 완벽한 장애인으로 변신을 했던 그녀.. 칸 영화제에 참석한 외국인들이 문소리의 멀쩡한(장애인이 아닌 사실을 알고) 모습을 보고 경탄해마지 않았다는 얘기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해가 됐을 정도다.
그런, 나의 아름다운 문소리 씨가 얼마 전 또 다른 나의 자부심인 노무현 대통령을 향해서, 맹비난을 퍼부었다.
“정부는 영화인들의 뒤통수를 쳤다.” - 문소리
“참여정부에서 독재정권 때나 가능할 법한 졸속적인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 문소리
영화인들이 자신들의 밥벌이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이에 대해 항의하고 자신의 뜻을 표출하는 것 자체를 탓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그러한 주장을 함에 있어서 영화인들과 정부 이외에, 그러니까, 스크린쿼터제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대다수의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것은 아니었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가 분명히 인지해야 할 것은, FTA를 아예 하지 않는다면 모르지만, 그것을 불가피하게 해야만 하는 것이라면, 분명, 어느 분야는 피해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 분야 중 하나를 우리나라의 영화인들이 떠맡게 된 모양이다. 억울한 마음 이해한다. 그리고 앞날에 대한 걱정으로 절망스런 마음마저도 들것이다. 하지만, 문소리 씨는 그 스크린쿼터제의 축소 때문에 정녕 노무현을 독재자라고 생각하는가?
우리나라와 미국의 FTA 체결로 인하여 피해를 당하는 분야에 해당되는 이들에게, FTA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가에 대한 냉정한 분별 따위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는 피해를 당한 이상, 무조건 졸속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 그것이 억울하다. 그것에 대해서 항의하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위대한 대한민국의 국민의 힘으로 이루어진 지금의 민주적 가치에 박정희나 전두환 시대에나 어울릴 듯한 칭호인 ‘독재’를 붙여야겠는가?
그렇게 따지자면, 모든 것이 독재다. 이번에 우리 회사에서 월급 명세서를 받았다. 그런데, 저번 달에 비해서 40,000원이나 의료보험료가 올랐다. 나 억울하다. 손해 본 듯하다. 그럼 이 정부는 독재를 행하고 있는가? 뿐만 아니다. 몰고 다니던 차가 고장 나서 오랜만에 한동안 타지 않던, 시내버스를 탔다. 그런데 요금이 무려 100원이나 올라있었다. 나 손해 봤다. 이 정부는 역시 독재를 행하고 있는가? 그건 아니지 않는가! 내가 다른 이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손해를 보았는지 이득을 얻었는지의 여부가 그 정부를 독재로 보느냐 민주로 보느냐의 판단 기준은 아니지 않는가!
FTA를 해서 그것을 주도했던 노무현이 뭔가를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그리고 그가 그것을 노리고 FTA를 실행했다면, 그것은 독재라고 비판할 수 있겠다. 또한, 그런 FTA에 대해서 비판하고 시위하는 것을 용인하지 않고 살벌한 청 잠바와 하얀 헬멧을 뒤집어 쓴 경찰들을 동원하여 무지막지하게 진압한다면 그것 또한 독재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노무현은 그러한 비판들에 대해서 너무나도 관대하기만 하다.
FTA를 해서 노무현에게 돌아온 것이 무엇인지를 문소리 씨는 진지하게 생각해 보시길 바란다. 원래 호의적이었던 시민단체들이 노골적으로 노무현에게 등을 돌렸다. 대신 딴나라와 같은 보수세력의 지지를 얻었지 않느냐고 반문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보수세력의 지지도 노무현의 입에서 ‘개헌’얘기가 나오는 순간 180도로 돌변할 것이니 그리 기대하지는 말아 달라. 그 보수세력의 지지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리고 노무현이 FTA하면 퇴임 후에 그걸로 무슨 재미라도 볼 성 싶은가? 그가 퇴임 후, 사업이라도 한다면 모르되, 그것이 아니라면 FTA의 실행이 노무현의 개인의 이익과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결론을 도출해내는 것에 그리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결국, 노무현이 FTA로 얻게 된 것은 문소리 씨와 같은 분들에게 독재자라고 호되게 꾸지람이나 들을 뿐, 정치적으로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다. 지난날의 권력자들이 그러했듯, 검은 돈 가방을 얻은 것도 아니요. 국민들에게 신과 같은 우러름을 받는 것도 아니다. 이래도 문소리 씨는 노무현이 독재자라고 생각하는가?
독재자! 그 말씀을 제발 함부로 하지 말아 달라. 소름끼치는 자유의 탄압과 무섭도록 폭력이 일반화 됐던 시절... 학교 앞의 살벌한 전경들... 지금의 노무현에게 독재자라고 저주하는 것은, 그 시절에 민주를 위해 목숨 바쳐 싸웠던 분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문소리 씨! 미안합니다. 당신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이 하신 말씀은 비판이 아닌 비난에 불과합니다. 그렇기에 이번만은 당신의 편이 되어드리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는 당신을 미워하게 되거나, 저주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앞으로도 좋은 연기 계속 부탁드립니다.
좌파정부도 아닙니다..
단지
사이비개혁정권일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