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모형자동차를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모형경주차와 스포츠카뿐만 아니라 모형트럭이나 트레일러도 갖고 있었을 것이다. 어릴 적 기억을 더듬어 보면 여러 대의 차를 운반하는 모형 탁송 트레일러와 흙을 퍼담으며 놀았던 덤프트럭이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 그래서인지 승용차를 운전하면서도 길에서 커다란 트럭이나 버스를 만나면 운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마침내 볼보트럭 코리아의 배려로 대형트럭을 취재하면서 트럭을 운전할 기회를 잡았다.
동경하던 대형트럭을 운전하다
우리나라 대형트럭 시장은 현대상용차, 타타대우상용차 등 2개의 국내 업체와 볼보, 스카니아, 벤츠, 이베코, 만 등 5개의 수입업체가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전에 80%에 이르던 국산 트럭의 점유율이 2006년 들어 50%대까지 낮아졌다.
볼보그룹은 승용차 부문을 포드에 매각했지만 트럭, 버스, 건설기계, 선박·산업용 엔진 그리고 항공기 부품 등을 만드는 종합제조업체다. 특히 볼보트럭 코퍼레이션은 2001년 프랑스 르노와 미국의 맥 트럭을 인수, 볼보그룹의 주력업체로 부상했다. 세계 대형트럭 시장에서 벤츠 다음으로 많이 팔리고 있다.
이달 시승한 트럭은 2006년 3월 출시된 볼보트럭 뉴 FH/FM 트랙터와 덤프트럭이다. 트레일러를 끌고 가는, 앞머리만 있는 듯한 트럭을 트랙터, 모래나 자재를 운반하며 적재공간을 들어올릴 수 있는 형태를 덤프트럭이라고 한다.
볼보트럭은 크게 근거리나 지역 운송에 적합한 FM과 대형화물의 장거리 운송에 적합한 FH로 나뉜다. 그리고 목적에 따라 FM/FH 트랙터와 FM/FH 덤프로 나누어진다. 여기에 사용 목적과 운전석 공간에 따라 4가지 캡을 선택할 수 있다.
볼보트럭 코리아에서 취재를 위해 준비한 트럭은 FM 덤프와 FH 트랙터. FH 모델은 FM보다 차고가 높아 운전석으로 올라가는 계단도 3개나 된다(FM은 2단). 그 중 기자가 시승한 트럭은 FH 트랙터 6×2 장형 캡. 6개의 바퀴 중 앞 2개는 조향, 가운데 2개는 엔진으로부터 동력을 전달받고 뒤쪽 2개는 트레일러를 끌지 않을 때 연비향상을 위해 살짝 들어올린다.
먼저 어릴 적 사다리를 타고 다락방에 올라가듯이 손잡이를 잡고 3개의 계단을 올라가 FH 트랙터 조수석에 앉았다. 주로 스포츠카나 서스펜션을 낮춘 승용차만 타다가 대형트럭 운전석에 오르니 완전히 2층 버스에 앉은 기분이다. 지나가는 승용차의 지붕을 내려다보는 느낌도 새롭고, 가로수 높이에서 보는 윗동네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FH 트랙터 중에서도 장형 캡은 키는 낮지만 넓다.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에 널찍한 공간이 있고, 좌석 뒤에는 침대와 넓은 수납공간, 냉장고까지 마련되어 ‘달리는 원룸’이 따로 없다.
드디어 FH 트랙터의 운전석에 앉아 시승할 차례다. 처음 트럭을 모는지라 조금 겁이 났지만 정신을 차리고 운전석 주위를 둘러보았다. 브레이크를 밟고 시동을 거는 것은 일반 승용차와 똑같다. 전진 12단, 후진 4단 자동 변속기를 전자제어하는 I-시프트 덕분에 일반 승용차처럼 기어를 D모드에 놓기만 하면 된다. 기어는 R(후진)-N(중립)-D(주행)-M(수동) 4가지 모드로 구성되어 있고, P(주차)모드는 대시보드에 따로 스위치가 있다. 정차시에는 기어를 N위치에 놓고 주차브레이크를 걸면 된다. 대형트럭은 연료와 브레이크 마모를 줄이기 위해 엔진 브레이크를 자주 사용하는데, 엔진 브레이크 스위치는 스티어링 오른편에 레버 형태로 붙어 있다.
큰 덩치를 가뿐히 이끄는 엄청난 토크
긴장을 풀고 양손을 벌려 가슴팍에 한아름 다가오는 커다란 스티어링 휠을 잡고 계기판을 점검했다. 속도계과 타코미터 사이에 한글로 표시되는 트립컴퓨터를 보니 볼보트럭이 한국 시장을 위해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스티어링은 승용차의 스티어링 휠을 돌리듯 쉽게 돌아간다. 출발, 오른발에 신경을 모아 부드럽게 밟기 시작했다. 가속이 되면서 약 10km씩 속도가 올라갈 때마다 기어가 변속되는 것이 느껴진다. 얼마 밟지 않아 체감속도가 30km 정도로 느껴졌는데. 속도계의 바늘은 60km를 넘어서고 있었다.
배기량 13.0X를 뜻하는 D13 디젤 직렬 6기통 엔진은 최고출력 480마력(1천400∼1천800rpm), 최대토크 245kg·m(1천50∼1천400rpm)를 자랑한다. 레드존은 2천200rpm 부근에서 시작된다. 실제 주행에서 자주 사용하는 900~1천600rpm 구간에서 최고출력과 최대토크를 모두 끌어낼 수 있다. 액셀 페달을 살짝 밟았을 뿐인데 8.5톤의 큰 덩치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큰 토크감을 뿜으며 스피드리미트가 걸리는 시속 90km에 금세 도달한다.
차선을 꽉 채우는 2.5m의 너비를 가진 트랙터로 다른 차선을 침범하지 않기 위해서 전신거울(?)처럼 길쭉한 사이드미러를 주시하는 등 신경을 많이 써야 했다. 차들이 뜸해지자 한결 운전이 여유로워졌다. 집채만한 트랙터가 기자의 의지대로 움직인다는 것이 무척 신기하면서도 놀라웠다.
짐을 실은 대형트럭이 달려오던 관성 때문에 브레이크가 밀려 추돌사고가 났다는 것은 옛말이다. EBD ABS까지 더해진 디스크 브레이크가 8.5톤의 트랙터뿐만 아니라 몇 배 무거운 트레일러를 끌더라도 정확하게 멈춰 선다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트럭 운전자들은 브레이크 패드와 디스크의 마모를 줄이기 위해 가급적이면 풋 브레이크는 적게 쓴다. 승용차를 몰 때는 몰랐던 사실인데, 갑자기 앞으로 끼어드는 승용차가 얼마나 얄미울지 짐작이 된다.
또 하나 인상적인 것은 푹신한 풀 에어 서스펜션 운전석과 조수석. 급브레이크나 요철 또는 비포장도로에서 운전자의 체중에 맞춰 자동으로 진동을 흡수, 언제나 거실 소파에 앉아있는 것 같은 승차감을 보인다. 운전자의 피로를 줄이기 위해서다. 전동식 시트의 메모리 기능과 난방, 환기 시스템까지 갖추고 있다. 운전경력 10년의 볼보 FH 트랙터 운전자 정현수 씨는 “하루에 500km 이상 달리기 때문에 연비가 좋은 트럭과 나쁜 트럭은 한 달에 기름값이 많게는 몇 십만 원씩 차이가 난다”며 경험상 볼보 트럭의 연비가 가장 좋다고 자랑했다. 장거리 운전시 피로감이 덜한 것도 볼보트럭을 구입한 이유라고 했다. 볼보트럭은 매우 쾌적하고 안락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매일같이 하루에 500km 이상 달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넓은 실내공간과 고급차 못지 않은 편의장비, 그리고 첨단 안전장비들을 경험하고 나니 트럭에 대한 매력이 새록새록 해진다. 이러다가는 1종 대형면허에 도전하지 않을까 싶다.
웹사이트|www.volvotrucks.volv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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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시간을 대부분 차안에서 보내야 하기 때문에 안락한 승차감과 다양한 편의장비는 대형트럭 운전자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여기에 월평균 300∼500만 원이 들어가는 기름값을 생각하면 당연히 연비도 좋아야 한다. 값이 국산보다 비싸지만 볼보 트럭을 선택하는 이유는 이 같은 편안한 운전감각과 좋은 연비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