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용트럭과 함께 새한의 7200cc급 엔진을 공유한 8t 카고입니다.
MAN에서 7500cc로의 발전- 86년 101Q 이전의 모델은 MAN D0846HM을 쓰고 있었다. 이 엔진은 동일회사에서 나온 8톤 카고와 아세아 광주공장에서 만든 군용트럭에도 탑재되었고, 끝까지 후손을 남긴 대상은 군용이 유일하다. 후일 등장한 BR101도 엔진 위치를 바꿨을 뿐 같은 미션을 썼다. 엔진과 동시에 대시보드도 같은 것을 공유한다.
BR101/BU100/BU100/BU110/BU120에도 공통으로 쓴 이 대시보드는 계기판에 크고 둥근 속도계가 위치하였고, 좌우에 작은 게이지가 설치되었다. 좌측 상단에는 연료계가, 우측 상단에는 유압계가 있으며 계기판 상단에는 화살표의 방향지시등 램프가 있다. 계기판 우측으로는 7개의 동그란 버튼이. 2개씩 세로배열이었으며, 마지막 하단에 1개가 있다. 각종 실내등과 전조등 및 안개등 작동 스위치였고. 스티어링 휠은 BS105와 비슷하나 혼 스위치 부분이 동그랗게 되어있다. 이 계기판은 리어엔진 관광버스인 BR101·시내버스 BV101·리어엔진 장축형인 BU110에 동일하게 적용되었으며, 전체적인 구성은 BV113R과 비슷하다. 이후 1986년부터 생산된 BF105에 적용된 계기판은 BS105와 동일한 것을 사용한다. 그리고 정갈한 뒷모습, 우렁찬 파워는 훗날 86년 이전 BF101의 기준이 된다. 이 당시의 버스들은 47인승 HD를 제외하고는 거의 MAN D0846HM을 나눠 쓰고 있었다. 현대 RB585/FB485. 아시아 AB185F(HA20 닮은놈)와 AM907, 대우 BV113... 다만 회사와 모델에 따라 마력수와 사양에서 차이가 났고, 따라서 타사 차들이 모두 한 모델에 기준했다고 말할 수 없는것이다. 또한 동아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놓은 HA20도 사양이 다른 엔진을 썼다. 고로 동아버스는 가장 단기간 내 교류한 셈이다.
'가래 끓는 소리' 가 추가된 것은 1986년 101Q부터. 8년 간 쓰던 D0846HM을 버리고 D1146으로 전향하면서부터다.
아시아 AM927.BS105와도 공유한 이 엔진은 특유의 가래 끓는 소리로 이전 모델과의 차별을 두었다. 실내에도 차츰 BF105의 윤곽을 갖춰나가는데 가장 큰 변화는 대시보드. 좌우측에 실내등. 안개등처럼 조명스위치 6개를 두었고, 움푹 파인 중앙부에는 속도계.수온계.연료게이지.적산계.RPM.엔진오일 압력 게이지가 배열되었다. 상단에는 전자 아이콘이 차량의 냉각수,브레이크 등의 상태를 나타낸다. 시동방식은 20년 넘도록 수동이었다. BF101이 생산되기 시작한 다음해, 어두운 경제와 혼란의 시국을 틈탄 10.26이 일어난다. 김재규 휘하 수많은 동조자들이 구속되어 공판이 열린 가운데, 새한은 박대통령 시신을 운구할 버스를 특별제작한다. 지금도 서울 국립현충원에 원형 그대로 전시된 장의버스는 민간에서 생각하는 그러한 구조가 아닌, 버스 뒤에 문을 내고 관을 밀어넣는 방식이었다. 대통령 시신이 버스로 운구되기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라인업 확장과 대우버스의 부흥(富興)-리어엔진 BR101(이차는 서울에서 좌석으로도 쓰였다)과 BV101, 오페라 글라스로 유명한 BV113. 로얄크루져의 조상 BH120S.H를 연달아 내놓으며 아시아 AM919, 동아 HA시리즈와 경쟁하며 다양한 라인업을 자랑한다. 86~88년 사이, 대우버스는 BF101Q라고도 105라고도 볼 수 없는 이상야릇한 모델을 선보인다. 바로 중동아시아 공략형으로 한정생산된 BF105 초기형. 대우버스 홈페이지에도 사진이 남은 이 금형 이후에 나온 것이 현재의 BF105다. 여지껏 시험모델로 알았던 이 버스의 궁금증을 풀어준 대우버스에게 경의를 표한다.
이와 달리 실패한 모델도 역사에 있었다. BS105 직전에 나와 금방 사라진 BV101S. 영업용 BV101의 차체에서 중문 부분을 메우고, RB 좌석사양과 비슷하게 유리창을 바꾸는 부분 개조를 거쳤으나, 시기상의 문제와 함께 '올드 시보레'의 문제를 안고 소리소문없이 사라진다. 그러나 영업용 BV101은 대우버스 공장에서 꾸준히 생산되었다.
10년 만에 되살아난 추억- 고2시절. 지금은 시외/고속이 통합 운영되나, 그때는 시외부문은 노포동 TR/부산 사상구 괘법동 사상TR. 그리고 고속버스는 동래터미널에서 출발하던 시절. 시외버스는 현재 삼신교통 공동출발지인 회차로에서 머물렀다가 떠나곤했다.(푸른교통이 주류)그곳에서 부산대학교 앞으로 가는 버스를 타면 손쉽게 도착할 수 있었다. 전철역 앞으로 나오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출발했다가 돌아오는 순환버스를 탈 수 있었다. 대영교통 소유의 7번에는 로얄시티/하이파워/BF105가 있었고, 간간이 그곳으로 가거나, 대형 콘서트가 열릴 때면 곡 105만을 이용하곤 했다.
현재 BF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인삼의 본지 금산에 있던 105마저 8월을 겨우 채우고 대차되었고, BF106마저 내수 아닌 외수용으로만 돌리고 있으니, 우리는 그저 근 반년 동안 한국을 빛낸 흘러간 노장의 실루엣을 통해 추억을 되살리는 것만이 위안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