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살 청년 전태일이 분신 자살했다.
노동 삼법의 규정을 법대로 지켜달라는 것이 전태일 분신의 전부였다. 5.16이후 대한민국은 경공업 위주의 수출 드라이브 정책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하고 있었다. 6.25로 폐허가 된 대한민국엔 자원도 자본도 없었다. 있다면 좁은 땅떵어리를 가득 메우는 사람이 있엇다. 경공업은 값싼 노동력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산업이다. 경공업 수출이 잘되면 될 수록 수출 경쟁력을 갖기 위해 노동력 착취는 필연적으로 혹독해지고 더 가혹해진다. 더 이상 대한민국이 값싼 노동력에 의존하는 경제구조로는 살 수 없다는 단말마의 비명이 바로 전태일의 분신이었다. 박정희는 알고 있었다 노동력 착취의 경제 구조로는 가난을 벗어나 봐야 필리핀 수준이란 것을. 박정희의 목표는 아시아 제일 국가에서 세계 우등 국가로 발전하는 일본을 따라잡는 것이었다. 전태일의 분신에서 박정희는 대한민국의 생존을 위해 반드시 대한민국 산업구조를 부가가치 높은 중화학 공업 구조로 바꾸어야만하고 그것이 자신의 역사적 사명임을 확신하였다. 박정희가 중화학 공업으로 산업구조를 바꾸겠다고 하자 세계 모든 국가가 비웃었고 미국의 조롱은 대한민국이란 국가의 자존심마저 뭉개는 것이었다. 국내의 모든 정적들은 장기 독재를 위한 거짓 명분이라고 저주했다. 자본도 기술도 없이 가발이나 만들어 파는 작디 작은 대한민국이란 빈국이 중화학 공업의 나라가 되겠다고? 그런 전례가 세계사에 기록된 적 없다고 파란 눈 높은 코 큰 키의 양인들은 배꼽 잡고 웃었다. 세계가 다 안된다는데도 독불 장군처럼 혼자 하면 된다고 외치는 박정희에게 국내의 정적들은 해도 안되는 일이 있다며 코웃음쳤다. 70년대 대한민국의 밥줄이었던 월남은 극심한 내부 분열로 공산화됐고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헌 신짝 버리듯 우방국 월남을 배신했다. 월남의 그 많은 민주화 투사들 중 핵심들 거의 전부가 비밀 공산당원들이었고 월남 패망의 원흉이었음이 공산화된 후 사실로 밝혀졌다. 믿을 수 없는 미국을 휴전선에 붙들어 두고 반대만 하는 정적들의 방해를 뜷고 없는 자본으로 세계사에 기록조차 된적 없는 가장 짧은 시일 안에 중화학 공업으로 산업구조를 바꾸기 위해 박정희는 유신을 감행했다. 유신 체제는 박정희 일인 체제였다. 박정희가 말이 곧 법이 되는 세상에서 박정희는 카이스트 만들어 과학기술의 원천을 세우고 포철 만들어 철강산업을 일으켜 자동차 조선의 토대를 키우고 여수 화학 단지를 밀어 부쳐 에너지 산업을 대한민국에 착근시켰다. 불과 6~7년 만에 이룬 업적이다. 지금 대한민국 국민이 누리는 모든 혜택은 그 유신의 강철 통치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배부른 돼지가 되지는 않겠다고? 배가죽이 등에 붙는 배고픔 속에서 국민을 살아가게 만드는 것이 옳은가? 빵을 해결하지 못한 국가에서 자유 민주주의가 작동하는가? 배부르기 때문에 인권을 찾고 자유를 우선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유신의 결과를 볼 수 없었던 70년대 필자 역시 중화학 공업 운운을 종신 대통령이 되려는 박정희의 가당치 않는 술수로 믿었다. 그 70년대 필자 또한 박정희 타도가 절대 선이라는 것에 추호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유신의 결과를 눈으로 보고 유신의 결과물로 먹고 사는 지금 박정희의 무덤에 침 뱉으면서도 필자는 박정희가 옳았음을 부정할 수 없다. 박정희가 유신을 하지 않았다면 대한민국은 지금도 남의 나라에 노동력이나 파는 후진국이었을 것임을 김영삼 5년 김대중 5년 노무현 5년을 겪으며 뼈저리게 확인했다. 추신: 장충 체육관이 필리핀의 원조로 건립되었다는 것을 아는가? 원조를 받지 않으면 살 수 없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그냥 거저 된 게 아니다. 피와 땀으로 얼룩진 역사의 굴곡을 다 겪으며 지금의 대한민국이 된 것이고 그 역사의 중심에 박정희가 있다. 지금 유신은 절대 악이라고 부르짖는 그 사람들이 고속도로 건설을 반대하고 포철 착공을 몸으로 저지하던 바로 그들이다.
유신의 시작은 전태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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