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어쩌면 우리는 수많은 가능성 중 하나를 살아가고 있는 걸지도 모릅니다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를 보면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수많은 미래를 한꺼번에 바라보는 장면이 나옵니다.
어떤 선택을 하면 이런 결과가 나오고,
다른 선택을 하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옵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도 비슷한 구조가 아닐까.
어떤 사건도 아무 이유 없이 갑자기 생기지는 않습니다.
교통사고 하나만 해도 그렇습니다.
차의 속도, 타이어 상태, 도로의 마찰력, 운전자의 집중력, 앞차와의 거리, 신호의 타이밍, 날씨, 그 시간에 그 장소에 있던 수많은 조건이 합쳐져서 하나의 결과를 만듭니다.
즉,
사건보다 먼저 존재하는 것은 법칙과 조건입니다.
중력이 먼저 있고,
시간이 먼저 있고,
원인과 결과가 있고,
생명의 탄생과 죽음이 있고,
인간에게는 감정과 욕망, 판단과 선택이 있습니다.
만약 이 세상을 만든 존재가 있다면 매 순간 사건 하나하나를 직접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수많은 법칙을 만들어 놓고 그 법칙 안에서 수많은 결과가 발생하도록 해놓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 법칙 안에서는 엄청나게 많은 가능성이 생깁니다.
오늘 그 길로 갈 수도 있고 다른 길로 갈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습니다.
5분 일찍 출발할 수도 있고 5분 늦게 출발할 수도 있습니다.
그 작은 차이가 다음 사건을 바꾸고,
그 사건이 또 다음 사건을 바꾸면서
수많은 미래가 갈라집니다.
마치 닥터 스트레인지가 보았던 수많은 결과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더 재미있는 생각이 듭니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서로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갈까요?
누군가는 성공을 경험하고,
누군가는 실패를 경험합니다.
누군가는 사랑을 경험하고,
누군가는 이별을 경험합니다.
누군가는 부유한 삶을 살고,
누군가는 가난을 경험합니다.
누군가는 평생 건강하게 살고,
누군가는 큰 사고나 병을 경험합니다.
만약 세상의 목적이 단 하나의 정답을 만드는 것이라면 굳이 이렇게 수많은 서로 다른 삶이 필요할까요.
반대로 세상의 목적이 ‘체험’이라면 조금 이해가 됩니다.
한 사람이 모든 인생을 살아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수십억 명이 서로 다른 위치에서 세상을 바라본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한 사람의 눈으로는 하나의 인생밖에 볼 수 없지만,
모든 사람의 눈을 통해 바라본다면
성공한 사람의 기쁨도,
실패한 사람의 좌절도,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도,
이별한 사람의 마음도,
가진 사람의 마음도,
잃어버린 사람의 마음도
모두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이런 상상도 해봅니다.
혹시 하나의 거대한 존재가 수많은 생명의 눈을 통해 자신이 만들어 놓은 세상을 경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닥터 스트레인지가 수많은 미래를 한꺼번에 ‘봤다면’,
이 세상에서는 그 수많은 가능성을
수많은 존재가 실제로 하나씩 살아보면서 체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좋은 일과 나쁜 일이 함께 존재하는 이유도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우리는 당연히 좋은 일을 원합니다.
사고는 피하고 싶고,
병에는 걸리고 싶지 않고,
돈을 잃고 싶지도 않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세상 전체의 입장에서 보면
행복도 하나의 경험이고,
슬픔도 하나의 경험이고,
성공도 하나의 경험이고,
실패도 하나의 경험일 수 있습니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생각이 하나 더 듭니다.
세상이 법칙에 의해 움직인다면, 나 역시 내 인생을 지키기 위한 법칙을 만들어 놓아야 하지 않을까.
나쁜 사건이 ‘절대로 일어나지 않게 하는 주문’ 같은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사건에는 원인이 있으니,
그 원인을 평소에 줄이는 나만의 원칙을 만들어놓자는 것입니다.
차를 탈 때는 반드시 안전벨트를 한다.
졸리면 운전하지 않는다.
차량 상태를 미리 점검한다.
화가 난 상태에서는 중요한 결정을 하지 않는다.
돈을 벌어도 비상금을 남겨둔다.
몸에 이상이 느껴지면 미루지 않고 검사한다.
위험한 사람이나 상황과는 일정한 거리를 둔다.
이런 것들도 결국 내가 만들어 놓은 작은 ‘법칙’입니다.
매 순간 순간적으로 판단하려고 하면 실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평소에
“이 상황에서는 나는 무조건 이렇게 한다.”
라는 기준을 만들어 놓으면,
그 법칙이 미래의 나를 보호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안전벨트 하나만 해도 그렇습니다.
사고가 날지 안 날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차에 타면 무조건 안전벨트를 한다’
라는 법칙을 미리 만들어 놓으면
어느 날 예상하지 못했던 사고가 발생했을 때 그 법칙 하나가 결과를 바꿀 수도 있습니다.
결국 이것도 같은 이야기입니다.
사건이 먼저가 아니라
법칙이 먼저입니다.
좋지 않은 결과가 생기는 데에도 수많은 조건이 필요하다면,
그 조건 몇 개를 미리 제거해 놓는 것만으로도
내가 그 결과를 체험하게 될 가능성은 줄어듭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이런 생각을 합니다.
좋은 미래를 바라는 것보다 좋은 미래가 나올 확률을 높이는 법칙을 평소에 만들어 놓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세상의 모든 일을 통제할 수는 없습니다.
우연도 존재하고,
다른 사람의 선택도 있고,
내가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사건도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작은 조건들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 조건들을 평소에 관리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운명을 바꾸는 방법’일지도 모릅니다.
결국 세상은
법칙이 먼저 존재하고,
그 법칙 안에서 수많은 가능성이 만들어지고,
그 가능성 중 일부가 실제 사건이 되고,
그 사건을 누군가가 자신의 눈과 마음으로 경험하는 구조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만약 어떤 거대한 존재가 존재한다면,
그 존재는 수많은 사람의 눈을 통해
닥터 스트레인지가 보았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가능성을
실제로 하나씩 체험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인간에게 남겨진 역할은 있는 것 같습니다.
모든 미래를 알 수는 없어도,
내 주변에 좋지 않은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을 줄이는 나만의 법칙을 미리 만들어 놓는 것.
그것만으로도 앞으로 내가 체험하게 될 미래의 모양은 조금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요.





































0/2000자